나에게 묻다!
게시판으로 본 여동의 역사 그 첫번째 이야기 본문
글에 앞선 한마디 : 이 곳에 나오는 이름들은 저와 한번 이상 상면을 한 분이거나 게시판에 글을 열심히 올리신 분들(내가 가입한 이후)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1996년 07월 18일 :
게시판에 첫번째 글이 강윤정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 안됨 그 외의 많은 분들이 여행누리의 밑거름이 되어 주셨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분들의 안부가 궁금합니다.)게시판에 자주 보인 분들이 약 16분 정도 계셨습니다.
1997년 05월 12일 :
드디어 약 10개월 - 300일 – 7,200시간 – 432,000분 – 25,920,000초 만에 100번째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이것은 기념비적인 일이었습니다.
1997년 12월 06일 :
송옥신님이 게시판에 등장하면서 여동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끔씩 소주 박스가 여동 위로 날아다니고 여기 저기 시체(?)가 보이는 꿈들을 여동 회원님들이 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97년 12월 10일 :
시티헌터님이 게시판에 사건 의뢰자를 찾는다는 글로 등장하면서 여동에 부쩍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12월 20일 :
이날 여동 회원들이 꿈꾸어 오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시삽 선거가 있었으며(지명에 의한 선출이었나?) 저의 생각으로는 지금의 시삽님이 이때부터 그 터프 함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지명에 의한 후유증 일수도)
1997년 12월 22일 :
시삽님의 화려한 후광을 업고 게시판에 등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도경철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은 몇 명의 시체만을 남기고 그렇게 저물어 갔습니다.
1998년 01월 13일 :
김한성님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게시판에 등장하여 너무 가벼운 듯하던 게시판에 무게를 실어 주셨습니다.
1998년 01월 16일 :
대망의 200번째 끌이 8개월이라는 시간만에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0번째글이 올라오는 시간보다 2개월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단축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시삽님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998년 02월 12일 :
“미쳐부러”의 주인공 안해권님이 게시판에서도 변함없이 미쳐부러를 연발하며 화려한 미쳐부러의 전성시대를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998년 02월 19일 :
조용하게 게시판에 등장한 사람은 항상 행복해하는 윤준현님 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조용할 것 같던 준현님은 그 후에 등장하는 김종환님과 쌍벽을 이루면서 게시판에 날개를 달 듯 열심히 게시물을 날리셨습니다.
1998년 02월 28일 :
이날을 저주하는 여동이 많았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조직관리 윤준현님과 함께 화려한 날개를 등이 아닌 가슴에 달고 나타난 김종환님의 출현이 바로 이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환님이 여동에 가입한 것을 저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 바로 김홍중님이 등장한 날이 바로 오늘 입니다. 우리는 환영했습니다. 한치 앞을 못 보는 것이 인간이기에…
1998년 03월 05일 :
정니미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게시판에 등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황정림님 이었습니다. 그녀는 게시판 실명제의 벽을 오가며 수시로 이름을 바꾸는 수법으로 많은 여동인들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정니미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후에 이 사건은 윤준현님을 비롯한 일부 여동님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아직도 게시판 실명제를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악영향(?)을 만들어 냈습니다.
1998년 03월 12일 :
이 시점을 계기로 여동에서 남성들의 위치가 좁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내화님의 등장을 시작으로 대거 여성회원님들이 등록하였던 시기가 바로 이때를 전후 해서입니다.
1998년 03월 24일 :
이날은 진명희님께서 등장하신 날로써 훗날 여동 티셔츠제작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의 등장이었습니다.(정말이지 티 너무 좋았습니다.)
1998년 04월 21일 :
정리 해고의 한파가 여동까지 불어닥쳐 활동이 지진한 회원은 해고한다는 확인 안 된 말이 게시판을 발깍 뒤집어 놓았던 정리해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그 말이 사실로 확인 되면서 여동 회원들이 벙개 및 정모, 여행 등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1998년 05월 06일 :
바람같이 등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행 못 가 죽은 귀신을 매달고 다니는 정하용님이었습니다. 하용님은 6월 정모에서 술에 빠져 죽어 두 번 죽은 귀신을 데리고 다니는 기구한 팔자를 지니게 됩니다.
1998년 05월 11일 :
김경아님이 게시판에 등장한 한 날로써 회원 가입 후 일정기간 동안 잠복기를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들이 보이던 시기였습니다.
1998년 05월 XX :
600번째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고 그 600번째 글을 쓰기 위한 치열한 암투가 있었던 흔적이 게시판에서 확인되는데 윤준현님께서 김종환님을 판정승으로 이기면서 600번째 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600번째 글은 준현님이 작성하신 간단한 게시판 역사입니다.
1998년 05월 25일 :
가입한지 무지하게 오래된 듯한 회원이 새내기를 가장하여 게시판에 등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조상휘님 이었습니다. 훗날 또 한 명의 상휘님 등장으로 인기 지명도가 약간 떨어지기는 하지만 카메라라는 첨단 무기를 들고 여행지를 설치는 모습에 여동 회원님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1998년 05월 26일 :
엄청난 울음소리를(우리는 이것을 포효라고 부른다) 내며 게시판을 공포의 도가니탕으로 만드는 회원이 등장하니 그분은 바로 남석호님 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ID만을보고 움츠려 들었지만 알고 보니 부드러운 남자로 일명 시체처리반으로 불리며 여동 모임이 있을 때 마다 안전 귀가를 책임져 줌으로써 여동 회원님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1998년 05월 29일 :
이날을 여동인들은 악몽의 시작이라고 부릅니다. 김홍중님이 멀리 미국에서 날아온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 이후 여동이들의 시체 발생빈도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며 시체처리반의 인기가 급 상승하는 여동의 경제 위기가 불어 닥쳤습니다.
1998년 05월 30일 :
내용 무
제가 너무 피곤한 관계로 요기 까지를 1탄으로 정리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고편
1998년 06월 01일 :
무엇엔가 마음을 빼앗긴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안성호님이 게시판에 글을 올린 날입니다. 한 터프와 한 체격 하시는 안성호님의 등장으로 여동에 일대 돌풍이 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아님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