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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들/여행누리

게시판으로 본 여동의 역사 그 두번째 이야기

風酒醉雨 2024. 4. 24. 15:43

 

정말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또 한번의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동 여러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이렇게 2탄을 올립니다.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저에게는 납덩이 같은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6월 이후 여동 회원님들의 글 올리는 횟수와 속도가 급속도로 상승하면서 신비로 동호회 중 최고의 동호회라는

찬사를 듣게 됩니다.

 

1998(이후 년도는 생략하겠습니다.)

06 01 :

예고편에서 알린 바와 같이 안성호님이 처음으로 등장한 날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미처부러의 안해권님이 이날 백수의 깃털을 털어내고 화려한 직장인으로 비상한 날이며, 대전에서 오석진이라는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한 중부지장 최초의 여동이 탄생한 날이기도 합니다. 후에 대전 벙개를 주선하였다가 말도 안되는 엄청난 폭탄을 맞은 관계로 요즘은 요양 중에 있다고 합니다.

06 02 :

안성호님께서 게시판에 2일 연속 등장하였습니다. 이날 이후 안성호님의 호는 안 삿갓이 되었는데 이후 게시판에 시가 올라오는 횟수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여동의 시 문화 활성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조상휘님이 시집 한권을 통째로 올리는 일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06 05 :

이날은. “소금강이 소금이 나오는 강 아냐?”라는 시삽님의 말에 여동 전체가 놀라 날입니다. 시삽님 아직도 시삽님이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 이것에 대한 담화를 발표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속초 여행이 있었습니다. 이 여행에서 엄청난 수의 시체가 발생하였다는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그 자료에 의하면 한 체력 한다는 김한성님이 가장 빠르게 시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06 08 :

600번째 글 올리기에서 윤준현님에게 패했던 김종환님이 와신상담하여 윤준현님을 누르고 700번째 글을 올린 날입니다. 이번 싸움에서 김종환님은 600번째 글 올리기 싸움에서 준현님이 사용하셨던 다음 글 참조 전법으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06 10 :

백지 게시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날 도경철님은 포토라는 이상한 ID로 등장하여 게시판 제목란에 물음표 하나만 찍어놓고 게시판 내용 란에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은 사건으로 이날 이후 백지 게시 사건이 게시판에서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06 12 :

상상도 못할 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게시판에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우리는 그를 정보관리(정보부 출신 아님)라고 부르며 좋아했는데 그는 권성욱님 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유용한 정보를 게시판에 뿌리며 게시판을 활보하였으며, 후에 시삽 모함 사건이라는 여동 초유의 반란사건에 연루되어오나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한 공로가 인정되어 퇴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제 활동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날 새로운 문인이 여동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는 여성시인으로 안성호님과 여동 문인회의 한 축을 이루게 되는 양선경님 입니다. 양성경님의 활동을 활발한 활동을 보이던 안삿갓님의 입지가 좁아지는 결과가 발생하였으며 그 여파로 안삿갓님은 여행에만 전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날 2차 백지 게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확인해보니 글 없이 그림만 첨부하여 올렸기에 백지게시라는 누명을 쓰게 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06 13 :

드디어 여동에도 그 당시 우리나라 전역을 흥분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붉은 악마와 월드컵 축구 열풍에 각종 벙개와 모임이 취소되는 상황이 속출하게 됩니다.

06 16 :

임선아님이 게시판에 등장하였습니다. 이름은 무지하게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관계로 어떻다는 글을 올릴 수 없네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단서 몇 개만 던져주세요.

06 17 :

자칭 고은 정이 흐른다는 고은정님이 게시판에 고은 정을 뿌리고 다닌 날입니다. 고은정님의 등장으로 대구에도 여동의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후에 퍼온 글을 올리면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징가와 짱가는 말이 필요 없는 수준의 기가 막히게 완벽한 글이었습니다(마징가와 짱가는 게시판 800번대 후반이 있습니다. 번호는 정확하게 모름).

06 21 :

한 동안 조용한(?) 시절을 보내던 여동에 정리미의 난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료되는 이현배님이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게시판에 이윤정이란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등장부터 가명을 사용하시더니 그 후에는 비카프리오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여동의 뭇 여성회원님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으나 그 후 속출하는 가명 사용자들을 막기 위하여 지금은 솔선수범 본명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일설에 의하면 현배님은 코난에 나오는 포비를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06 24 :

김종환님의 중대 담화가 있던 날입니다. 종환님은 이날 담화에서 자신이 소주 반병이상 또는 맥주 한병이상을 먹으면 여동을 탈퇴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요 정작 소주와 맥주의 병크기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어 알맹이 없는 담화라며 비난을 받았습니다.

06 28 :

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활발하게 움직이시는 김경아님의 생일로 조촐한 생일 벙개가 있었는데 이 벙개를 시작으로 생일 벙개가 빈번하게 여동 하늘을 울리며 모이기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시체가 발생하지 않은 최초의 벙개로 기록되면 이에 반발한 상당수의 회원님들이 시체가 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는 후일담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여동 게시판의 글 올라오는 속도에 놀라 정신없어 했으며, 회원님들조차 삼일정도 게시판을 확인하지 않으면 엄청난 양의 글을 한꺼번에 읽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겨나게 됩니다.

07 03 :

여동의 신승훈(어디까지나 자칭)이라며 여승훈님이 게시판에 등장하였는데 요즘 신승훈이 TV 활동을 하지 않은 다는 이유로 여승훈님도 여동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재철님도 이날 등장하셨습니다. 누군가의 표면을 빌리자면 글로는 아주 멋진 사람, 직접 만나보면 고재철님의 탈을 쓴 공산당이라고 표현하더군요(절대 제가 한 말 아닙니다. 게시판 어느 구석에 코멘트로 달려있던 말입니다.). 재철님의 등장 이후 여동 게시판은 코미디동 게시판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이 보이면 그수많은 퍼온 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07 08 :

임선희님께서 게시판을 총 천연색으로 물들이며 등장하 날이며, 이날 900번째 글이 여동의 게시판을 장식하였습니다.

07 10 :

아주 짧은 글로 게시판의 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없은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그런 분이 게시판에 등장하니 세상을 평정하기 전인 조평전님이 등장하였습니다.  평전님의 등장은 모임은 참석 못해도 여행은 가야 한다는 확고한 지리를 연동에 전파하였습니다.

07 13 :

우리에게는 시삽이 있다”-여동 회원들, “우리에게는 왕언니가 있다”-여동 여성당 당원들, 여동의 왕언니로 통하는 김영란님이 하루초란 이름과 함께 등장한 날입니다. 왕언니의 등장으로 여동 여성당의 입지가 확보 부동하게 여동에 자리잡게 됩니다(그런데 여동 여성당이 있기는 있나?)

07 15일 :

또 한 명의 대전 여동인 인 고인재님꼐서 등장한 날입니다. .그러나 대전 벙개에도 참석하지 않아 오석진님으로 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는 확인 안된 소문이 있습니다. 앞으로 대구, 대전, 광주 여동님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07 20 :

한때 여동의 인기 지명도에서 수위를 차지하였던 조상휘님의 입지를 잠식하는 세력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세력의 중심이 된 이상휘님의 등장이 있던 날입니다. 이날 이후 그 동안 조상휘님께 풀지못했던 스트레스를 이상휘님에게 다시 발산하는 회원들이 있어 이상휘님이 상당한 고생을 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여동의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시체가 되어 거리를 헤매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이면에는 김홍중님과 여름 휴가가 버티고 있더군요.

07 21 :

이날은 여동의 기념일로 정해야 하는 날이라 생각합니다. 윤준현님과 김종환님의 일진일퇴의 싸움속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양선경님이 1,000번째 글을 게시판에 올린 날로써 윤준현님과 김종환님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속도였습니다. 100번째 글이 올라오기까지 10개월, 200번째 글이 올라오기까지 8개월이 결렸는데 200번째 글이 올라온 지 불과 5개월 만에 1,00번째 글이 게시판에 올라온 것입니다. 이렇게 빨라진 속도 때문에 신비로의 접속 속도가 떨어졌다는 신비로 측의 항의도 있었지만 현재는 신비로 최고의 동아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감히 추측하 건데 이런 속도라면 11월쯤 2,000번째 글이 게시판에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이때쯤 울릉도 여행이 있었습니다. 정기여행으로 간 것은 아니지만 많은 회원님들의 참석인 있었고 참석한 회원님들 만큼이나 많은 추억들을 담아왔던 여행이었다고 합니다(저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07 22 :

항상 장한일을 하고 상을 받던 장한상님이 여동 게시판에 등장한 날입니다. 그러나 게시판에 등장 이후 여동에서 상을 받지 못해서인지 그리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상님 열심히 활동해야 상 줍니다. 비록 그것이 한잔 술의 술상이라 하더라도

07 23 :

울릉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철의 여동인들이 하나 둘 게시판에 여행 후기를 올리기 시작한 날로써 그중 가장 압권은 고은정님의 후기로, 신비로 메인 홈페이지에 소개되는 기염을 토하였습니다. 또한 이날 게시판에는 여동을 파행으로 이끌만한 엄청난 글이 올라왔는데 여동 개혁안이라는 제목으로 운영진을 파괴해야 한다는 글이었습니다. 확인 결과 그 글의 추구하는 바는 갑자기 비대해진 여동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구조 조정안으로 밝혀져 많은 여동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1,021번째 글). 또한 그 동안 여동이 모였던 자리를 표시했던 지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동여 동 모임지도가 편찬되어 새내기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1,033번째 글)

07 29 :

1,000번째 글을 올리지 못하고 지붕만 처도보고 있던 김종환님과 윤준현님. 1,000번째 글을 올리지 못한 충격 때문이었는지 아무 말없던 윤준현님이 1,100번째 글을 올리면 화려한 제기에 성공하면서 김종환님을 앞서는 듯하였으나 이제 100단위는 의미 없다는 말과 함께 2,000번째를 게시글을 노리고 있는 종환님을 발견하고 다시 마음을 다 잡아 2,00번째 게시글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07 30 :

오랜 잠수함을 타고 있던 정필종님이 오랜만에 재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필종님은 그 동안 여동의 집권 세력이 구창당파에서 신흥 활동파로 이양된 것을 모르고 실언을 하셨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사과하는 실언사과 사건이 있었습니다. 필종님의 말에 따르면 실언사과는 맛이 없었답니다. 또한 자리를 비웠던 최경순님이 돌아와 왕언니의 자리를 놓고 김영난님과 일전을 벌였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근거 없는 헛소문으로 밝혀졌으며 두 분의 확고한 우정이 이 사건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답니다.

 

2편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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