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묻다!
게시판으로 본 여동의 역사 그 세번째 이야기 본문
긴 겨울잠으로 들어간 바람그리기 그가 목일 말라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고 간단한 글 한 줄 남기고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갑니다.
전에 어디까지 했더라???
1998년(이후 년도는 생략하겠습니다.)
08얼 01일 :
침묵이 여동 게시판을 엄습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 날입니다.
08월 02일 :
8월의 크리스마스, 아니 8월의 산행과 정모가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오여 산에 오르기로 했는데 산에 오르는 것이 힘들어서 였는지 산행에는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고 정모에만 많은 인원이 참석하여 힘겨움과 친해지느니 오직 시체가 되겠다는 투철한 여동 정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날 정모에서는 98년 여동 상반기 결산(1,152번째 글)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기록들이 가득하더군요.
08월 03일 :
오석진님의 악몽 같은 벙개가 있었습니다. 대전 벙개는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 벙개로 끝났으며 그 여파로 오석진님은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아직 지방 벙개라는 것은 불가능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방 여동의 활발하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후세 여동인들은 그 사건을 빈 깡통 벙개 사건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때쯤 우리나라는 연일 내리는 비로 물 반, 고기 반 아니 물 반, 사람 반이란 말일 정도의 엄청난 수혜를 입었습니다. 그 여파로 8월 7~8일로 계획되어 있던 강화도 몸보신 벙개가 취소되었으며 그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대부분 남자회원들 이었다고 합니다(대체 왜???).
08월 05일 :
그 동안 하얀 천막 뒤에 있는 것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우리들의 지주 시삽님이 그 베일을 벗고 게시판에 자신의 신상명세를 올렸으며, 김은영님이 등장과 동시에 벙개를 때리는 시작 벙개라는 전무후무한 벙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08월 06일 :
“그는 어디서 왔으며,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형근님이라는 분이 등장한 날입니다. 그렇게 생사가 궁금하던 여동 창립멤버의 처음이자 마지막 등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여동 창립멤버들의 생사도 확인하고 싶어 지는군요. 지인님이 게시판에 처음으로 등장한 날입니다. 많은 아픔을 담은 이름 지인. 진의 늘임 말 이랍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지인님에게 직접 듣는 걸로.
08월 07일 :
억수로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여기, 저기서 수재민이 발생하였으며 우리의 장한상님도 그 수재민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수재민들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시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피해가 남아있어 그것을 복구해야 하는 관계로 여동 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소식입니다.
08월 08일 :
여러 동호회에 가입되어 여기저기 벽을 허물고 다니시던 김현숙님이 여동에도 입성하여 동호회간 벽을 허물고자 하였으며, 그 영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망치와 곰배(이 사투리를 아시는 분이 있을까?)를 들도 다니면 여러 동호회의 벽을 허물고 다니는 여동 회원님들이 있었습니다.
08월 17일 :
우리들의 주소록 지기 남석호님께서 처음으로 여동 주소록을 배포하여 여동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날입니다. 그러나 배포된 주소록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어 회원님들의 컴이 말썽을 부리고 주인을 배반하는 일명 “바이러스 먹은 주소록” 사건이 발생하여 엄청난 파장으로 여동을 강타했습니다.
08월 20일 :
첫 등장에는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악 여동이라는 이상한 말과 함께 정모와 각종 벙개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오직 게시판에서만 활동하며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이아진님 이었습니다. 아진님의 등장이후 아진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수많은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동원되었으며 여동인들 사이에서 아진님에 대한 의견이 분분 하였습니다. 그러나 11월 정모에서 그 비밀이 벗겨졌다는 군요. 또한 이날 여동을 슬프게 하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우리의 호프(맥주 아님)이자 나의 혈관에는 알코올이 흐른다고 말하며 투철한 여동 정신으로 짧은 시간동안 많은 여행과 모임으로 참석으로 회원님들의 마음에 선명하게 흔적을 남기신 김홍중님께서 짧은 방황(방학이었나?)을 끝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날입니다. 이날 여동에는 새로운 바다가 하나 더 생겼는데 그 바다의 이름은 눈물바다라고 합니다. 홍중님 보고 싶어요. 빨랑 돌아오세요.
08월 24일 :
우리의 스케줄러로 열심히 활동하신 김종환님이 활동이 미진하다는 이유로 광주로 좌천되었으며 그것을 계기로 한동안 위축되었던 지방 여동들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는 엄청난 일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호사다마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된 말이 아닐까 합니다.
08월 25일 :
비카프리오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모임마다 조용함 속 균형감으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주었던 이현배님이 여동을 배반하고 여동에서 탈퇴하는 여동 탈출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여동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어 시삽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신여동 국수주의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여동에 탈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말이 생겨났으며 일부는 탈퇴 버튼을 없애자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습니다.
08월 29일 :
8월의 끝에서 가장 풍성한 하루가 아니었는지 생각합니다. 이날 하루 동안 여러 가지 모임(?)이 있었는데 조직관리 윤준현님께서 주관하신 뮤지컬 벙개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하드락 까페”라는 뮤지컬로 윤도현이라는 가수가 나오는 뮤지컬이었는데 확인 안된 소식으로는 윤준현님과 윤도현이 친 형제간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뮤지컬을 보기 위하여 멀리 대구에서 고은정님과 하희숙님이 먼 걸음을 하셨으며 그 이후 뒤풀이 겸 벙개로 대학로에서 2차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로니에 공원을 처음 방문하신 대구 회원님들의 반응은 “뜨아~~~” 그 자체였습니다. 그 후 이어지는 코스마다 투철한 여동 정신으로 끝까지 버틴 대구 회원님들과 함께 동터오는 하늘을 바라보신 서울 회원님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또한 이날 양선경님과 바람그리기님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여동에 1호 커플이 탄생했다는 말도 잘(?)되는 소문이 여동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선경님께서 멋진 남자분과 결혼하면서 그 소문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바람그리기님과 손잡고 걸으면 시집을 빨리 갈 수 있다는 또 다른 소문이 돌고 있어 바람그리기님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날 또 하나의 벙개 여행이 있었습니다. 조상휘님이 주관하신 춘천 벙개 여행이었는데요 상휘님 혼자서 4분의 여성회원을 모시고 여행하는 환상 여행이었다고 합니다. 조상휘님은 이 여행이후 혼자란 것은 쓸쓸한 것이라며 짝 찾기에 열중이라고 합니다. 그런 나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상휘님에게 어울릴 것 같은 여자분을 알고 있으신 분은 상휘님께 바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이 부분은 상휘님 장가보내기 위원회 회장 도경철님의 특별 부탁으로 삽입하였습니다. 여동 분들의 이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이날 태은님이 게시판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여동을 탈출하였던 현배님이 여동 특수 수사과의 불심검문에 검거되어 다시 여동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이 부분은 현배님의 진실만을 말하라는 요청에 의하여 수정합니다). 여동에서 잠시 탈출하셨던 현배님은 세상의 냉엄한 현실에 염증을 느껴 여동 탈출 60시간만에 여동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최근 여동에서 최고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고재철님께서 그 유명한 우리나라 공영방송 KBS에 얼굴을 비취는 사건이 있었습니다(옆모습만 그것도 1초 약간 못되는 시간이 방송됨,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재철님 맞아??)
08월 31일 :
무더위와 장마로 얼룩졌던 8월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여동 게시판에 실명제가 선포되며 모든 여동인들이 실명을 사용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으나 일부 여동인들이 아직도 가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가명 사용자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시간이 우리들의 젊음과 희망을 담아 흘러가고 있으며 새롭게 시작되는 한달과 또 다른 계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