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묻다!
게시판으로 본 여동의 역사 그 다섯 번째 이야기 본문
어느덧 차갑게 불어오던 바람이 이제는 따사로움을 가득 담은 한가함을 세상을 비취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만큼 변해가는 것도 많이 있고요.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놓고 싶었던 것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기 위한 발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다섯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제발 돌만 안 날아오길)
1998년-? 우리는 흔히 작년이라는 표현으로 그 해를 부릅니다. 그 중에서도 11월, 그 11월의 시작은 서산 벙개 여행의 끝으로 시작됩니다.
11월 01일
여동의 악동(?)들이 서산을 휩쓸고 올라왔습니다. 여동인들은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서산에 남아있던 백수님은 여동인들이 서산 바닥에 남긴 진한 흔적들을 지우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서산 앞바다 모래사장을 뒤집어 놓으시고 참외밭에 가서는 참외를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아님 말고.). 또한 서산여행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발견된 바퀴벌레 한 쌍은 얼마전 결혼을 했습니다. 여행을 하라고 했더니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네요. 여행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11월 02일
주백수님이 여동의 흔적을 지우면 느낀 커다란 아픔의 글에 대한 답가가 조상휘님에 의하여 게시판에 장식되었으며, 유배지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김종환님이 광주 벙개에 관한 글을 올리셨습니다.
11월 03일
진명희님의 생이었으며, 여기 저기서 진명희님에게 꽃과 축하의 메시지들이 날아갔으며 진명희님께서 그 축하들을 받아내느라 힘들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11월 04일
황석구님이 게시판을 도배한날로(대부분이 퍼온 글이지만) 그 글들의 양과 질에 놀란 여동인들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게시판에 글일 올리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11월 07일
11월 정모가 변함없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시판상에 정모에 대한 후기가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분위기를 알 수 없네요. 그날 분위기 아시는 분 있으면 추가로 올려주세요.
11월 12일
여동이 전국구로 발전하는데 또 하나의 기여를 하신 멋진(? ~ 난 못 봤으니까. 엄청나게 예쁘시답니다.) 아낙이 등장하니 바로 부산지기 신혜영님이 게시판에 등장한 날입니다. 신혜영님은 “어색함”이라는 글로 게시판에 신고를 하셨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이었다며 도대체 얼마나 잠수하고 있었냐는 지방 여동들의 문의가 있었답니다. 또한 이날 강화여행이 준비되고 있었는데 이 여행은 지난 여름 여동 남성분들의 몸보신 여행으로 계획되었다가 여성분들의 반발과 하늘의 노하심으로 어쩔 수 없이 4개월이나 여기 되었으며 여성분들이 동참이라는 단어와 함께 다시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11월 14일
서산에 묻어 있는 여동의 흔적들을 아직까지 다 지우지 못한 주백수님께서 무지하게 큰 복수의 칼을 들고 서울에 백수들의 흔적을 남기겠다며 엄청나게 큰 벙개를 때린 날로써 지방 여동이 서울 벙개를 때린 최초의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황구님의 등장으로 한 동안 멍하니 게시판만 바라보던 고재철님이 비장의 코멘트 안 달기 글로 다시 비상을 시작한 날이며 고재철님의 코멘트 안 달기 글에 죽어라 코멘트를 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권순형님이었습니다. 순형님은 한번 쭈꾸미는 두 번 죽어도 쭈꾸미라는 말을 남기며 재철님의 글에 열심히 코멘트를 알았습니다(이후 순형님은 쭈꾸미와 이웃 사촌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후에 밝혀진 바로는 이 코멘트 안 달기 글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는데 그 진위는 2000번째 글을 올리기 위한 재철님의, 재철님에 의한, 재철님을 위한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2000번째의 글을 고재철님이 올렸으나 “나 시집간다”라는 글로 양선경님이 뭇 여동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게시판 숫자 전쟁의 최전선에 있던 김종환님과 윤준현님은 이제 천 단위의 싸움은 갔다. 다만 만 단위의 싸움만이 있을 뿐이라며 첫 만 번째 글을 올리기 위하여 준비중에 있다고 합니다.
11월 16일
안성호님이 대구로 발령 났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한사람의 아까운 인재를 귀양 보내야 하는 거냐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14일 광주 벙개 후기가 올라와 있습니다. 후기 올려 주신 선희님 수고하셨습니다.
11월 17일
전부터 말이 많았던 게시판 공개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일은 민감한 사안인 관계로 더 깊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아직도 게시판은 공개입니다. 또한 이날부터 게시판에 시리즈류의 글들이 사정없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고재철님에게 일격을 받으신 황석구님이 새롭게 연마한 무술로 판명되었습니다(하지만 사람들은 그 시리즈류의 원조는 조상휘님 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아는 사람은 압니다.)
11월 18일
이날은 정말 슬픈 날이었습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30년 만에 연출된다는 유성우를 보기 위하여 평택, 화성 근처까지 내려갔으나 유성우는 고사하고 별똥별 하나 보지 못한 “성우의 반란” 있었으며 유성우를 핑계로 유숙희님의 집에서는 “처녀들의 야간식사”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고 합니다. 이날 또 한 명의 고수가 등장했는데 바로 인터폴님 이었습니다. 인터폴님은 엄청난 그래픽 능력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최신 무기를 들고 여동에 잠입하여 있는 범죄자들을 책출하기 위하여 출동한 날입니다.
11월 19일
대화방이 정식으로 개설된 날이며 98년 첫눈이 내린 날이기도 합니다. 여동 분들은 첫눈을 보면서 거의 광적인 반응을 보이셨고, 그 뜨거움은 첫눈 벙개로 이어졌으나 첫눈은 여동인들이 뜨거움에 놀라 하얀비로 변했다고 합니다. 또한 귀양을 준비하던 안성호님은 잠시 파견이라는 요상한 단어로 99년 03월까지 우리 곁에 있게 되었습니다.
11월 21일
이날은 여동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날입니다. 수많은 기행과 여장부 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지키며 여동에서 여권신장의 지대한 공헌을 하신 양선경님께서 여동인 최초로 시집을 간 날입니다. 예식장을 찾은 많은 여동 남성분들이 후회의 한숨을 쉬었다고 하는데, 이 이유가 예식장에 선 선경님의 모습이 선녀와 같았다고 합니다. 왜 이런 미인을 여동의 남자들은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요? 여동 남성분들 있을 때 잘 합시다(뭘 잘해야 자는지 모르지만).
11월 22일
게시판으로 보는 여동의 역사 그 세번째 이야기가 올라온 날입니다(2091번째 글). 이날 게시판의 풍경은 지인님과 황구님, 그리고 글로벌님의 연합군에 개별 회원님들은 산발적인 게릴라 전술로 버티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11월 26일
이날 벙개가 있었는데 무서운 신인의 등장이 있었습니다. 글로벌님의 아군인 듯하면서도 적군인 윤정님의 등장이 있었는데 윤정님은 후일 자칭 샬랄라 공주라며 공주병의 전형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11월 28일
정말 멀리 있는 분의 생일이었습니다. 바로 전설의 그 이름 김홍중님(홍중님 5월인데 서울 안 오시나요? 홍중님 보고 싶어요.) 98년의 11월은 이렇게 저물었습니다. 강화도 몸보신 벙개 여행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제가 참석하지 못해서 올리지 못합니다. 관련 기록도 보이지 않네요.
12월 01일
IMF가 온지 일년 되는 달이라고 부자들은 좋아하고 서민들은 울던 그 춥고도 희망을 꿈꾸던 달입니다. 강화여행에 대한 후기가 올라와 있었고 “98년의 마지막은 정동진에서”라는 표어를 걸고 일출 여행이 계획되었습니다.
12월 02일
샬랄라 공주의 반란이 시작된 날로 그 동안 게시판을 주름잡던 황구님과 글로벌님을 무찌르고 게시판에 새로운 공주로 등장하였습니다. 과연 여왕이 들 수 있을지 그것이 알고 싶다.
12월 03일
광주에서 열심히 여동의 입지를 만들고 있는 종환님의 생일이었는데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종환님과 재철님의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난 날로써 이날 재철님은 무지하게 큰 입술을 종환님께 보냈습니다. 또한 이날 또 한 분의 춘천 여동이 등장하였는데 이상서님으로 황구님의 친구분이라고 합니다.
12월 12일
종로에서 98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여동의 송년모임이 있었습니다. 할 말없습니다. 참석은 했는데 기억이 없습니다. 뭐 그렇다고요.
12월 14일
게시판으로 보는 여동의 역사 그 네번째 이야기가 올라온 날입니다(2301번째 글).
12월 24일
솔로 벙개란 이름으로 Christmas 벙개가 있었는데 혹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Christmas가 좋은 이유는 하루 쉴 수 있기 때문이다”라 고요. 그래서 아직 앤이 없나 봅니다.
12월 29일
샬랄라 공주에게 돈데크만 대신 삼식이가 생긴 날인데, 그 당시의 샬랄라 공주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스런 삼식이’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 앞일을 모른다고 하나 봅니다. 요즘 샬랄라 공주님이 삼식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곧 있을 복날을 기대리고 있는 듯합니다.
12월 31일
또 한 분의 부산지기 정해자님이 98년 마지막 날에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끝과 시작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으며 98년의 마지막 득은 도경철님이 올렸는데 그 글의 내용이 정말 환상 적이었습니다(글 내용 : “오늘은 누가 채팅 방 지키지?”). 이날 여동인들은 정동진으로 떠났습니다. 가다가 포기하신 현배님도 있었지만….
12월은 한 해를 정리하는 달이라서 그런지 참 조용히 지나갔다는 느낌입니다. 1번의 정모와 2번의 벙개, 그리고1번의 여행, 이렇게 여동의 98년은 저물어 갔습니다.
새해 1999년 게시판의 처음은 김종환님이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