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묻다!
게시판으로 본 여동의 역사 그 일곱 번째 이야기 본문
또 쓰고 있네요.
한편 끝낼 때 마다 다시는 쓰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데,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이렇게 쓰게 됩니다. 쓰면 쓸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이제 그만 해야지 했는데 그래도 지난 게시판을 뒤지면서 혼자 웃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하며 그 행복의 일부라도 여동님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또 글을 남겨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중심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또한 상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쓴 글이기에 실수나 오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점 양해 바랍니다.
1999년(이하 년도 생략)
03월 01일
음력 정원 대보름이었습니다. 게시판에는 태은님의 “내 더위 사가유!”라는 글로 한순간 여동인들 긴장하게 만들었으나 대답하는 사람들이 없어 하나도 더위를 하나도 팔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날 바람그리기님께서 이사를 한 날이네요. 집들이하라는 요구가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03월 02일
정모 공지가 올라와 있으며 고재철님의 쉬리 벙개가 긴급 벙개로 올라와 있습니다. 며칠 후 보여진 수정/삭제(고수정)님의 글이 생각나내요. “은~쉬~리..!”
03월 06일
단양으로의 정기여행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행에 참석하지 못해서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말 안 해도 아는 것 그것이 정기여행 아닐까요?
03월 08일
서울에 눈이 왔다는 기록인 보이며 권순형님(아는 분들은 안다)께서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무게를 얹어서 다녀야 갰다며 배낭에 아령을 비롯한 쇠뭉치들을 챙겨두었다고 합니다.
03월 09일
사오정 시리즈를 최신 유머라고 올렸다가 바부딩이라는 말의 돌멩이를 수없이 맞은 고재철님꼐서 쭈꾸미 벙개로 바부팅이의 위기를 모면할 번 하였으나 쭈꾸미는 죽음이라고 끝까지 우기다가 결국 바부딩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03월 12일
단양 정기여행 사진정이 시애틀에서 있었으며 부영님께서 사탕을 상자로 받았다고 자랑하였으나 알고 보니 혼자라는 것을 불쌍하게 여진 후배 여직원이 보내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여동 여러 동지들은 그럼 그렇지 어떻게 부영님이 배신을 할 수 있겠냐며 상당히 기뻐했다고 합니다.
03월 13일
녹화방송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보여준 날로써 사탕사건으로 인하여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건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8시 벙개를 7시 벙개로 착각하여 153에 올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1ㅣㅅ간 더 술을 먹어야 하는 피해 아닌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03월 16일
청주에서 아주 찬란하게 등장한 분이 계셨으니 바로 변은희님으로 ‘해’라는 닉을 쓰면서 언제나 밤을 낮처럼 살아온 여동에게 밤에도 해를 보 술 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부 회원들은 그렇지 않아도 잠을 못 자는데 밤에 해까지 보이면 어떻게 자냐는 푸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날 여동 1대 공주로 취임한 샬랄라님의 생일 벙개가 있었습니다.
03월 17일
그대들은 전실을 아는가? 여동의 살아있는 전설, 움직이는 술탄(술로 된 폭탄), 이름만으로도 여동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 이름, 김홍중님의 귀국설이 있었는데요 그 설 하나만으로도 여동은 초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으며 은둔생활도 접어드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03월 18일
전설의 코멘트 쇼 2탄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날입니다. 과연 사람들은 기억할까요? 처절했던 2,000번 글 올리기 싸움을, 거기에 멋모르고 끼었다가 들러리만 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복수의 칼날의 갈며 기다리던…! 개봉 박두 “3,000을 향하여 쏟아라” 주연:아직 모름, 조연:미루어 짐작컨데 권순형님, 고재철님, 고수정님, 심부영님외 다수, 그래서 결과는?(궁금하면 계속 읽으시라)
03월 19일
일산에서 “그녀의 자전거가…”라는 이름으로 자전거 벙개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참석했던 여동들은 자전거보다 뒤풀이 때 마신 막걸리가 더 좋았다며 혹시 “그녀의 자전거가 막걸리를 실었다”가 원제 아니었냐는 문의를 게시판에 쏟아 냈습니다.
03월 22일
해(변은희)님의 생일이었으나 청주라는 지리적 여건에 의하여 벙개는 없었으나 게시판으로 축하 인사가 쏟아졌으며 3,000고지를 향한 발 빠른 행진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내일(23일)에는 3,000번쨰 글이 등장할 것이라는 정보에 조연배우들은 주연배우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는 듯합니다.
03월 23일
조연들의 주연 다툼에 한 발짝 멀리 떨어져 3,000번쨰 글의 초석이나 만들겠다며 2,999번쨰 글을 올리겠다는 단역배우들의 경쟁 또한 만만치 않았는데요 그때 까지만 해도 이름도 없는 단역이었던 팥쥐(일명:팥구이-전미순)님께서 조연이나 되어 본다며 2,999번째로 예상하고 올린 글이 안성호님이 조금 더 빨리 글을 올리면서 3,000번쨰 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때 3,000번쨰 글을 올리겠다면 경쟁하던 조연들은 모두 조연으로 남게 되었으며 다음 4,000번째 글에서는 기필코 주연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필살기를 기르는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03월 24일
오랫동안 게시판에서 모습을 감추셨던 주백수님이 잠시 얼굴을 비췄으며 권순형님께서는 휴대폰을 하늘로 날렸는데 그냥 떨어져 박살이 났다며 “비행기도 돼지털이고 휴대폰도 돼지털인데 왜 비행기는 안 떨어지고 휴대폰만 떨어지는 걸까”라는 궁금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03월 26일
아 그 언제 였던가? 한 때 여동의 새끼줄러(스케줄러)였으며 차기 대권후보 1순위를 말달리며 “시삽에게 충성을”이라는 구호아래 시험을 3일 앞둔 시점에서도 정기여행에 참석했던 충성맨, 인간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한번의 실수로 광주로 귀양(스스로는 광주 여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파견이라고 우기고 있지만)갔던 김종환님이 약 1년여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서울로 복귀한 날입니다. 이후 종환님은 초야에 묻혀 살겠다며 여동 모임에 코뺴기도 안 비치고 있습니다(종환님 웬만하면 얼굴 좀 보여주세요)
03월 27일
호주로 출장 가 있는 동안 게시판에 도배를 못해 손목이 근질거렸다며 유숙희님이 출장에서 돌아오자 마자 게시판을 도배한 날입니다(당부 드립니다. 정말 도배하지 맙시다. 정리하도 힘든데 도배한 것 일일이 대 확인하려면 너무 힘듭니다)
03월 28일
과연 이날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날은 여동 1호 커플(일명 바퀴벌레 커플)인 평정님과 선영님이 백년가약을 맺고 1호 부부가 된 날입니다. 이날 이후 여동에 바퀴벌레가 득실거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03월 29일
이날은 특별한 일이 없었네요. 뭐 당연하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브라질관의 친선경기를 1:0으로 이기는 아주 당연한 일 밖에 없었습니다
봄을 준비하는 여동의 3월은 이렇게 저물어 갔습니다. 뭐 그 뒤로 멜리사 바이러스가 한때 기승을 부리기도 했지만 봄을 기다리는 여동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04월 01일
4월은 한윤선님께서 “복권 같은 사랑을 만나고 싶다”라는 글로 열었는데요 어떤 분께서 복권 같은 사랑은 돈이 쏟아지는 사랑이냐고 물어와 한때 게시판이 꽁꽁 얼어붙었답니다.
04월 02일
정모 공지가 올라와 있었으며 부산에서 부산 여동 모임이 혜정님과 정혜자님에 의하여 조촐하게 열렸다고 합니다.(지방 여동이여 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도 미약하리라!? 이게 아닌가?)
04월 04일
정모가 사당에서 있었습니다(이때는 정모를 강남에서도 하고 사당에서도 하고 신촌에서도 하고 그랬는데 왜 지금은 종로에서만 하는 것일까요? 집행부는 반성하고 정모 장소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 이동하라! – 이러다 잘리지). 이날 정모에는 청주에서 해(변은희)님께서도 참석하셨는데 어떻게 서울까지 올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정기여행 인줄 알았다는 말도 안되는 답변을 하여 여동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또한 정모 후 벙개 여행으로 섬진강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정모에서 항상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시체놀이와 쌍파진(뭔 지 다들 아시죠? 쌍방향 파도타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04월 06일
바퀴벌레 커플의 신혼여행 후기가 올라왔습니다(궁금한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보시기를)
04월 07일
부영님의 영화 벙개 공지가 올라와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는 별로 보고 싶지 않지만 부영님의 그 맴매(당해본 사람,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 무서움을)가 무서워 참석하겠다는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여동 사기에 보면 이 사건을 맴매 벙개 사건이라 하여 엽기 벙개로 분류하여 기록하였다고 합니다(역시 여동은 시대를 앞서가 그때 벌써 엽기를…) 그리고 이날 국제사이버수사대 인터폴님께서 실명제를 하자는 안건을 올리면서 실명제 바람을 일으키고자 하셨으나 여동 사람들은 감춰진 비밀들이 많아서인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04월 08일
이때쯤 무슨 일이 여동에 있었던 것일까요? 분명 “하늘은 맑았단다. 구름 한 점 없더란다.”의 날씨였건만 수많은 벙개가 여동 하늘에 난무하니 처음 참석하는 새내기들 뿐만 아니라 기존 회원들조차 그 난무하는 벙개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며 이 시기에 여동 하늘은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맑은 날씨를 유지하였으나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새내기 기압골과 기존회원들의 기선잡기 기압골이 만나면서 그렇게 많은 벙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04월 09일
아! 우리 어찌 잊으라! 그날의 MT를! 인터폴님의 벙개 맞은 MT의 시작, 이날 인터폴님의 MT 첫 공지가 올라왔으며 이후 인터폴님의 MT는 여동 공식 MT가 되었습니다(폴님 전 한번도 참석 못했는데 참석할 기회를 함 주시면 다되겠습니까?). “스타를 아십니까:” 이 질문에 “별이지”, 또는 “ 연애인 아냐”하고 하신다면 그냥 담 들로 넘어가십시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아냐”라고 하신다면 3169번째 글은 한번 봐주세요.
04월 10일
도박판에 지존이 있다. 연애엔 선수가 있다. 그럼 게시판엔? 도배가 있을 뿐이다. 이날은 4월의 게시판을 잔인하게 휘저어 놓은 두 사람, “남과 여” 시리즈를 올리며 주도권을 잡아간 황구(황석구)님과 조상휘님의 시집 사건 이후 다시 시집으로 무기를 삼으신 부영님의 한판 승부가 게시판에서 있었는데요 두 사람은 열심히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승부를 겨루었으나 승자의 타이틀은 엉뚱하게도 글은 하나도 안 올리고 댓글만 남기신 밤이슬님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을 후세에서는 어부지리 사건이라고 표현했는데, 제가 판단하기에는 밤이슬님의 뒤집어지는 멘트로 인한 승리로 결코 어부지리가 아닌 밤이슬님의 댓글 스킬에 의한 승리였습니다. 또한 이날은 송옥신님께서 1달짜리 백수가 된 날이기도 하네요.
04월 14일
너희가 짜장을 아느냐?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표현 가능한 날이었습니다. 안성호님께서 “짜장면 먹었다”라는 글을 올리자 마자 그 뒤로 달리는 댓글들. 눈으로 대충 헤아려도 족히 30개는 넘어가는… 이것이 정말 여동의 실체란 말인가?(그때 짜장면 드신 분들 중에 시집, 장가 가신 분들 있으세요?)
04월 16일
결코 만만치 않은 또 한 명이 게시판에 문을 두드렸으니 그 이름하여 여정님, 어디서 퍼온 글도 아닌 것이 자작 글도 아닌 것이 라는 말을 여동에 울리게 만들었던 글들을 한번 올리면 최소 4개는 기본으로 올리시는 신 도배녀 여정님의 첫 등장이 있던 날입니다.
04월 17일
인터폴님의 MT가 있었던 날입니다(후기가 없어).
04월 22일
부영님의 한마디가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날입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이제 그만 글을 푸시죠”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부영님은 “그래도 꿋꿋하게 푼다”라는 말과 함께 “덤벼라! 맴매의 맛을 보여주겠다”라며 주먹을 감싸 쥐니 뜨거운 기운이 피어 올라 게시판에 전달되었고 합니다.
04월 23일
과연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올리는 것일까? 한윤선님께서 3월, 4월 2달 동안 올린 글 중 처음으로 다른 제목의 글이 올라온 날입니다. 지난 2달 동안 ‘그냥’이라는 제목으로 확인된 글만 7개인데요 그 이유를 윤선님께 물어본 즉 윤선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냥”
04월 24일
형님 오날이 무신 날인지 아십니까? 형님. 아그야 뭔 날이다냐? 형님 오늘이 형님께서 여동에 가입하신 날입니다. 형님. 우리의 영원한 형님이신 따거님께서 처음 게시판에 등장한 날입니다. 따거님은 아그들에게 삼행시로 기선 제압 후 게시판에 들어오셨습니다. 도경철님의 생일이었으며 사전 공지도 없다가 주민등록보고 알았다는 경철님의 한마디에 여동인들이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며 쓰러졌고 그 와중에 이아진님께서는 시체들의 위한 심야버스 노선과 시간에 관한 정보를 올려 여동인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04월 26일
여동 게시판이 인터폴님의 노력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한 날입니다(지금도 게시판을 위해 잠복근무 중이신 인터폴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짝! – 잠복근무에 방해될까 한번만 쳤습니다).
04월 28일
여동의 영원한 지하벙커, 우리는 그곳을 그렇게 불렸다. 한윤선님의 PC방이 문을 홀 라당 연 날입니다. 정식 오픈은 아니었지만, 정식 오픈일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지하벙커는 한때 정모 후 여동의 휴게실로도 이동되기도 하였으며 아이스크림 사건이라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건을 만들어낸 장소 이기도 합니다(아이스크림 사건은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발생하는 사건으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04월 30일
한윤선님의 지하벙커 오픈식이 게시판에 생중계된 날이며 시삽 교체설이 나돌아 여동을 혼란케 하였는데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1대 시삽이던 송옥신님이 사퇴한 날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처럼 1999년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부제를 달고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게시판으로 본 여동의 역사 그 일곱 번째 이야기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