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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들/여행누리

8년 만의 여행(단강 여행)

風酒醉雨 2024. 5. 3. 12:21

머릿속으로 그리고만 있던, 그것도 8년이라는 시간 동안을 그리고 있던 곳에 다녀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고 싶었던 곳의 근처였지만 그것 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토요일 8 40분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참고로 저희 회사는 격주 근무입니다. – 얼마만에 쉬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침대에서 뒤척이다 9시에 일어나 씻고, 옷 입고, 방 한구석에 있던 카메라와 엷은 잠바 하나를 가방에 넣고 그냥 전철에 올랐습니다.아 책 한권도 챙겼지요. 8년된 책 그리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강원도 원주군 부론면 단강리.

단강이라는 단어가 참 정겹게 느껴집니다.

결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단강도 저의 시골마을과 비슷한 모습 일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곳에 가면 고등학교 시절 책을 읽으며 느꼈던 순수, 평화로움, 여유 뭐 그런 것들일 다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원주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원주에서도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2시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이라네요. 여유를 찾으러 왔는데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시간을 계산하고 있습니다.여행을 떠나오면서 아주 천천히 걸어보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는데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지기만 하네요. 너무 깊이 바쁨이란 것에 빠져있었나 봅니다. 제법 먼 길을 왔는데 느껴지는 것이 없네요. 너무 성급한 생각인가?

- 따갑게 쏟아놓은 가을 햇살의 열정을 등지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있는 그 길의 중간에서 기다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음미해 보며 그렇게 서 있다. 간혹 지나는 시내버스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시선을 맞추며. 그 작은 움직임에 시선을 맞추듯 내 삶 속에서도 그렇게 모든 것에 시선을 맞추어 갈 수 있었으며 좋겠다(버스 기다리며 한 낙서).-

결국은 버스를 잘 못 타 버렸습니다. 부론까지 가는 것을 타야하는데 이 버스는 문막까지 밖에 가지 않는다네요. 조금은 쉽게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냥 어렵게(번거롭게 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가기로 했습니다. 40분의 시간을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버스에 올랐습니다. 시골버스, 차장으로 지나는 풍경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런 기분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시골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초행길이라는 것과 늦은 출발, 중간의 기다림으로 소비한 시간들, 그런 것들로 인하여 단강까지는 갈 수 없었습니다(참고로 단강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2번뿐이더군요).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 있는 곳은 부론이라는 작은 읍내인데 커다란 강도 있고 추수가 한창인 들판도 있습니다. 아주 천천히 걸었습니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 논에서 짚단을 세우시는 어르신들 그리고 강물 위에 무리 지어 있는 오리들과 그 위로 붉은 빛깔을 입히며 하루를 마감해 가는 가을 태양까지.

그곳은 내가 찾고자 아니 느끼고자 했던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다름 차는 1시간 30분 뒤에나 있다는 군요. 어슬렁거리는 어미개, 논뚝에서 진 담배 연기를 뿜고 계시는 아저씨, 그리 넓지않은 도로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벼, 물이 말라버린 시냇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 한가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나처럼 스치듯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행복하고 한가로운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깎여 나가는 산모퉁이 만큼이나 아픈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단강이라는 마을을 부론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보았습니다. 제가 처음 온 길과 반대방향으로 돌아 나가는 버스였는데 원주로 나가는 길이 한 방향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게 3시간을 달려가서 3시간을 몸으로 느끼고 다시 4시간을 달려 집에 돌아왔습니다. 마음 가득히 여유라는 느낌을 담아서, 아마도 내일이면 그 여유라는 느낌은 온데 간데 없어지겠지만 가끔은 생각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번 여행은 행복했습니다.

 

아직 못한 말

당신들의 힘겨운 일터에서 여유와 한가함을 느꼈다는 것이 죄송합니다. 그러나 지나는 버스를 보며 잠시 일손을 멈추시는 당신들의 모습에서 절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 비록 당신들의 자식들이 타고 있지 않아도 환하게 웃으시는 것은 기다림에 지친 체념이 아니라 당신들의 향해 돌아오고 있을 자식들에 대한 준비와 사랑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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