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묻다!
준비 안된 여행(태백산 여행) 본문
준비 안된 여행(태백산 여행기)
나에게 여행이라는 단어는 사진이 주는 특별함만큼이나 편안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가끔은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여행도 있다. 이번 태백으로 가는 길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여행이었다.
서문
언제나 여행은 날 흥분 시킨다. 하지만 그것은 그 여행이 준비된 여행이었을 경우에만 그럴 것이다. 준비된 여행 – 그것은 마음으로 얼마나 내가 그 여행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마음 가짐을 얘기하는 것이다. 지금 바로 즉흥적인 생각으로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여행을 떠나도 그 여행에 대한 기대나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단순한 구경이지 않을까?
준비 안된 여행 그 힘겨운 시작
금요일 저녁 컴퓨터를 가지고 이리저리 놀다 보니 어느새 밤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 갈증이 가득 담긴 목이 시원한 콜라 한잔을 원했으나 불행이도 집 안에 콜라가 없었다. 우유 한잔으로 갈증을 삭히고 다시 포맷해 놓은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마음 속으로 교차하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하면서도 이번 여행을 가야 하지 말아야 할지가 가장 큰 나의 혼란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6시30분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약 2시간의 짧은(?) 잠과 습기가 모두 빠져나가버린 칼칼한 목으로 힘겹게 하루를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얼마간 멍청하게 앉아 결론 내리지 못한 이번 여행에 대한 생각을 마저 했고 일단 약속은 했으니 약속장소에는 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충 짐을 꾸려 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철 안에서도 여지없이 준비 안된 여행의 갈등이 날 괴롭혔다. 마음이 즐겁지도, 별 기대도 없는 여행을 왜 가는 거냐며…
2시를 조금 넘은 약간은 이른 시간에 서울역에 도착하였고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쌀쌀함이 나의 생각들을 점점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만들었다. 3시를 넘기면서 모여들기 시작하는 사람들 속으로 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숨어 버릴 수 있었고 그 숨어 버림을 통하여 준비 안된 여행이라는 갈등을 조금은 묻어 둘 수 있었다. 그렇게 버스에 몸을 실었고 서먹함을 간직한체 출발하였다.
어둠을 한 아름 안은 대지의 공기가 창문 너머로 살그머니 스며들어 버스 안을 완전이 잠식했을 때쯤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소주에 나도 잔을 들어 슬며시 술이라는 녀석의 품으로 잠겨 들었다. 어쩌면 나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준비 안된 여행에 대한 갈등이 날 더 열심히 즐기도록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약 5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강원도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태백산 밑에 도착했다.
준비 안된 여행 그 의미 담기. 하나
도착하기 얼마전부터 희미하게 내리던 진눈개비는 싸락눈으로 모양을 바꾸었고 늦은 저녁은 시장이라는 단어로 맛있는 진수성찬이 되어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몇 잔의 술잔이 돌아가고 잠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았다. 싸락눈은 조금 더 굵어진 눈발로 날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결코 눈을 감지 않았다. 눈에 눈이 들어가 녹아버린 것이 눈이 시려 흘린 눈물인지, 눈이 녹아 흐르는 눈물인지 결코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눈물을 흘리면서 준비 안된 여행의 첫번째 의미를 담아보았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 여행은 언제나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며 나만 준비된다면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 장미의 가시처럼 차가움을 품고 있던 태백의 바람도 유리 벽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영향을 주지 못하듯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담겨 있는 작은 소망들이 현실에서 조금씩 이루어지고 그것이 행복이며 여행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행복해 진다면 이곳 태백에서도 그렇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내일이 걱정된다. 과연 이런 모습(술에 찌든 모습)으로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자야겠다.
준비 안된 여행 그 의미 담기. 둘
잠의 너머 어디쯤에선가 들여오던 소리는 조금씩 현실로 다가온다. 휴대폰 밸 소리인지, 시계의 알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로 다가오는 작은 소리에 어렵게 몸을 일으켜 산행을 준비한다. 어둠의 절친한 동지가 된 추위라는 녀석이 서서히 날 점령해가는 순간 산행이 시작되었다. 올라가면서 나보다 먼저 새벽을 연 사람들의 발자국과 입김 서린 공기를 들이마시며 또 다른 사람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헤아려 보려 하였으나 내 짧은 생각으로는 그 이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산 정상을 느낄 수 있는 곳(언제나 정상까지는 10분 남아있다.)쯤에서부터 서서히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눈꽃들은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100번 말해도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은비령”에 나오는 이 구절이 생각났다. “그것은 들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본 다음 에야 하나하나 가슴에 담아지는 풍경들이었다.” 정상의 추위는 서로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어느 정도 녹일 수 있었으나 바람의 심술과 안개의 묵묵함은 소중한 것이 너무 많으면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의미였는지 화려한 일출을 기대했던 나에게 “오늘은 일출 없어”라고 말하는 듯했다(다음에는 목욕하고 몸 단장하고 올라와야 할까?)바람과 안개를 정상에 남겨 두고 내려오는 길, 정성을 담은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현배님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모두가 즐겁고 따듯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현배님 그때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태백의 품경들을 마음에 담고 돌아오는 차에서 준비 안된 여행을 정리했다.
얻은 것 2개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읽은 것 1 개 –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결론은 1개 이익이다. 고로 즐거웠다.
하하하!!!